최근에 나는 기도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여기면서 노력하였던 내 삶의 자세가 매우 세속적인 것을 발견하였습니다.
그것은 그냥 얻어진 것이었습니다.
어디에서 누구에게서 배운 것도 아닌 그냥 습득된 것이었습니다.
그리고 그 것은 비성경적이었습니다.
로욜라의 이냐시오가 제시하는 '원리와 기초'라는 묵상자료를
음미하면서 삶을 바라보고 이해하는 자세를 정도해 봅니다.
나의 삶의 자세를 발견하는 기도
“ 사람은 우리 주 하나님을 찬미하고 경외하고 섬기고,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다. 그 외에 이 땅 위에 있는 다른 모든 것들은 다 사람을 위하여, 즉 사람이 창조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게 하기 위하여 지음을 받았다. 따라서 사람은 사물이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데 도움이 되면 그만큼 그것을 이용할 것이고, 방해가 되면 그만큼 배척해야 할 것이다.
그러므로 만일에 피조물이 우리의 자유에 맡겨졌고 금지아래 있지 않다면, 우리는 모든 피조물에 대해서 중용을 유지해야 한다. 즉 우리는 질병보다 건강을, 빈곤보다 부귀를, 업신여김보다 명예를, 단명보다 장수함을 더 좋아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. 따라서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. 우리의 유일한 욕망과 선택은 우리가 조성된 목적에로 보다 잘 인도하는 것이어야 한다. “
위의 문장은 세 가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.
첫째는 인간을 이 땅에 보낸 목적을 보여주고 있다.
둘째는 다른 피조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.
z셋째는 인간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말하고 있다.
이 기도를 하는 동안 성령님의 인도를 잘 받기 위하여 마음이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는 중용적 마음이 필요하다. 여기서 말하는 중용은 어떤 기준이 있는 중용을 말한다. 그 기준이란 “창조된 목적 즉 보다 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!”이다. 그 목적을 달성할 수만 있다면 질병과 건강, 빈곤과 부귀, 업신여김과 명예, 단명과 장수 이 모든 것이 같은 가치를 지닌다. 이러한 기준을 내면 안에서 깊이 성찰해 보고, 내면의 움직임을 잘 살펴서 그 문제를 가지고 주님과 투쟁도 벌이고 그분께 동의하며 감사와 찬양을 돌려드릴 수 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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